untouchable

2013.08.17 04:38

anonymous 조회 수:278

우리는 평범하게 만났다.

누군가의 대신일수도 있는 소개팅


반쯤은 설레고 반쯤은 시간 떼우러 나갔던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보잘것없는 여자애 하나였다.


의례적인 인사치레 후 적당히 나가려던 나에게 물어오던 작고 낮은 소리가 울릴 때

조금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상형이 뭐에요?

저요?


그녀는 별 대답 없이 미지근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가 피하려 했던 눈은 나를 파고들고 있었다. 순간 우쭐해진다.


저는 그냥 착한 여자 좋아해요. 이해해 줄 수 있고, 성격이 좋은 여자.

저는 손을 잡을수 없는 사람이 좋아요.


특이한 이상형이네, 뭐 별로 신경쓸 필요는 없잖아.

그냥 가볍게 만나고 헤어지면 끝인.

만 오천원짜리 빙수같은 사이


술을 마시러 간 곳에서 눈을 쳐다보는 건 그녀의 버릇이란걸 알았다.

벨을 누르고 주문을 시키는 동안에도 누군가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 여자가 재미있었다.


얘기를 나누다보니 알게 된 건

적당한 싸구려 친절에 설탕 발린 말이면 열릴 여자라는 거였다.


나의 위선에 무너져서 다릴 벌려놓고는 오히려 자기가 죄책감에 빠질 멍청한 년.


좀 쉽게 가져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저 그런 젖가슴을 주무르고 과하다싶을 정도의 운동을 할 때 까지도 이제 끝이란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잠든 그녀의 얼굴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었을 때

대실 이만원짜리 모텔방이 좁게 느껴지고 온전한 어둠에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없었다.


스위치가 있을만한 구석을 더듬다 손에 걸린 봉지에서 나는 바스락소리가 시끄러웠다.

손을 조금 더 지나쳐서 잡힌 스위치를 켜고 눈에 들어온 것은 테이블에 놓여있는 컵라면과 젓가락. 꼬마김치 한 팩. 햇반 하나.

그리고 접힌 영수증


약간의 두통을 느끼고 일어나서 페인트칠이 까진 구닥다리 서양식의 의자에 앉았다.

영수증엔 반듯한 글씨가 씌여 있었다.


일어나서 먹고가요.

먼저 갈게요.


그리고 그 옆에 작게 뭉게진 글자를 봤을 때 나는

그녀를 조금 더 소중히 대해줬어도 좋았을 꺼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잠깐 뒤 나는 그녀가 사온 물건들을 쓰레기통에 쳐박은 뒤

전리품이 없는 전쟁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