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조직의 표적이 된 70대 노인들이 제갈량 뺨치는 지략을 펼쳐 역으로 보이스피싱 조직원 검거에 일조했다.

지난 18일 전북 김제시 봉남면에 사는 이모(79) 할아버지의 집에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할아버지의 개인정보가 유출돼 통장에 있는 돈이 모두 빠져나갈 수 있어요."

겁이 덜컥 난 이 할아버지. 하지만 고령이어서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게 오히려 기회가 됐다. 할아버지는 친구를 불러올 테니 친구 휴대전화로 통화하자고 수화기 건너편 남자에게 한모(76) 할아버지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줬다.

지역에서 조합장을 지내며 사리에 밝은 한 할아버지는 전화를 받자마자 보이스피싱임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대신 두 할아버지는 연극에 돌입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돈을 모두 현금으로 인출해 냉장고 냉동실에 보관해라", "곧 경찰에서 연락이 갈 텐데 그 때 조사를 받으러 집에서 나가면 된다" 는 등 여러 가지를 요구했다.

할아버지들은 순순히 응했다. 일단 예금이 있는 산림조합으로 갔다.

조합에서 할아버지는 '보이스피싱 전화가 왔는데 지금 연극 중'이라는 내용의 필담으로 조합 직원들을 역공에 합류시켰다. 조합 직원들은 눈치 채고 곧장 경찰에 신고했다.

할아버지들은 "조합에서 현금 4300만 원을 인출했다, 냉장고 냉동실에 돈을 넣었다"고 보이스피싱 조직원을 속였다. 그러나 실제 돈을 인출하지는 않았다.

두 시간가량 보이스피싱 조직과 휴대전화 통화가 마무리된 뒤 할아버지들은 유유히 집을 나섰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말한, 밖에서 경찰을 만나야 한다는 속임수에 넘어가는 척하며 안심시킨 것이다.

얼마 뒤 이 할아버지 집에 보이스피싱 조직원 중국동포 최모(28) 씨가 침입했다. 최 씨는 '냉장고에 현금 4300만 원이 있는 빈 집'으로 알고 있었지만 집 안에 돈은 없었고 대신 한 무리의 경찰이 잠복하고 있었다.

김제경찰서는 이날 절도미수 혐의로 최씨를 검거했으며 조만간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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